크툴루의 부름 7판 팬메이드 시나리오
무원수사록無寃搜査錄
一門宴頑童爲癘 - 天倪錄
집안 잔치에 못된 아이가 나타나 일가친척이 모두 머리가 깨어져 죽었다. - 천예록
written by 곽두칠
• 배경 : 18세기 조선
• 적정 플레이 인원 : 2인 이상의 다인(1인 가능)
• 플레이 난이도 : 中下
• 키퍼링 난이도 : 中
• 로스트 가능성 : 中下
• 플레이 시간 : 4시간~6시간
• 추천 기본 기능 : 관찰, 듣기, 자료조사, 언어(한문)
• 그 외 추천 기능 : 회피, 의학, 식물학, 자료조사, 심리학, 설득, 말재주 등 다양한 능력치
• 본 시나리오에는 실제 역사의 일부분을 참고하여 가공한 내용이 존재합니다. 시나리오의 모든 내용은 픽션입니다.
• 이후 플레이 예정인 탐사자 분들을 배려하여 시나리오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공개적인 SNS, 블로그 등에서 언급하는 행위를 자제해주시기 바랍니다.
• 룰북없는 키퍼링을 금지합니다. 키퍼링 커미션은 부득이한 경우에 허용하고 있습니다. 세션카드는 본 시나리오 상단에 게재되어 있는 이미지를 사용하여도 무방합니다. 그 외에 본 시나리오로 금전적인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불허합니다.
• 타 사이트에 본 시나리오를 허락없이 재배포하는 것을 금지합니다.
<개요>
영조 37년, 평안도 아검군 동위현에서 머리 깨진 시신들이 발견되어 민심이 흉흉하였고, 이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사건의 범인을 잡고자 나랏님께서 명하여 조선 전국팔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방문(榜文)이 나붙게 됩니다.
신묘(辛卯)년, 한 약초꾼이 뒷산에 머리가 깨진 모자(母子)의 시체가 있다고 보고하여
금상(今上)께서 의금부(義禁府)·형조(刑曹)·한성부(漢城府) 삼사(三司)에 합동 수사를 명하였으나
수사가 부진하여 사건 해결을 위한 단서를 제공하거나 범인의 신상을 아뢰는 자에게는
一. 양인(良人)은 세 계자(階資)를 올려주고 실직(實職)을 제수하며
二. 천인(賤人)이면 종량(從良)하여 천민 신분을 벗어나게 해줄 것이고
三. 노비(奴婢)는 범인이 주인일 경우 주인을 고발하면 자신은 종량하고 사촌 이상 친족은 공천하여 공노비로 만들어줄 것이매
四. 공통 포상금으로 면포 200필을 주겠노라 약조하였다.
또한 범인을 은폐할 시 양인(良人)은 천인으로 강등시키고
천인 및 본가의 노비는 극변 잔읍(極邊殘邑)의 관노비(官奴婢)로 보내 그 자를 엄중히 처벌할 것이라 하였다.
시작하기에 앞서
관서지방의 동위현에는 큰바람이 서북쪽에서 일어나고 요사한 빛이 위로 달을 범하였습니다. 붉고 누른 운기(雲氣)가 사방을 하루종일 꽉 덮은 흉조가 동위현에 만연할 무렵, 어느 한 약초꾼의 고변으로 인해 동위현 뒷산에서 머리 깨진 모자(母子)의 시신 두 구가 발견됩니다. 이 일을 시작으로 읍성의 동북쪽 성곽 아래에서도 동일하게 머리가 깨어져 죽은 남자 시체가 발견되거나 의원 집 대문 앞에 실종되었던 환자가 머리가 깨어진 시체로 돌아오는 등, 실로 기이하고도 두려운 일이 한 달 동안 연속해서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관아에서는 범인을 찾아내기 위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하였는데, 앞서 발견된 네 구의 시체뿐만이 아니라 이후 열닷새 사이에 스물세 구의 시신들이 더 발생하여 총 스물아홉 명의 사람들이 살해되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의 시체들이 발견됩니다. 거기다 이 사건의 초검관을 맡았던 동위현의 현령, 조승갑마저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하며 사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됩니다.
탐사자들은 모두 이 사건의 전 검시관이었던 조승갑의 뒤를 이어 수사를 위해 영조 임금의 명을 받아 동위현으로 파견된 인력들입니다. 현 임금이신 영조께서도 이 극악무도하고도 거대한 규모의 연쇄살인에 대하여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임금께서는 누구라도 이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는 자에게는 그 공로를 듬뿍 치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십니다. 탐사자는 각자 대의를 위해서든, 개인의 이득을 위해서든,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공통된 목적을 가지고 시나리오에 참여하게 됩니다.
탐사자 가이드
조선은 신분이 엄격하게 분리되는 계급 사회였고 신분에 따라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의 범위가 달랐습니다. 따라서 탐사자가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신분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가볍게 설정하려면 아래에 제시되어 있는 정보로도 충분하나, 좀 더 자세하고 생생한 플레이를 원하다면 세부 설정들을 참고하여 탐사자를 구상해도 무방합니다.
양반
조선시대의 지배계층으로 문관 벼슬인 동반(東班)과 무관 벼슬인 서반(西班)을 포함한, 벼슬을 할 수 있는 신분을 지칭하며 왕족과 관료 계층이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양반 계층은 대부분 <언어(한문)> 기능에 능통하고 <교육> 수치가 높습니다. 관직에 올라 나라로부터 녹을 받고 토지를 지급받는 양반은 부유한 지주일 것이며, 몰락한 양반 출신이라면 하루하루 농사를 지으며 책 한 쪽 읽을 시간 없는 가난한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양반 계급의 탐사자는 현 임금인 영조의 명을 받아 동위현에서 일어난 사건을 조사하러 파견되었다는 등의 설정이 가능합니다.
양반은 크게 당상관과 당하관으로 나뉩니다. 당상관은 정3품 이상의 고위 관리직으로 현대로 치면 정1품은 국무총리급, 정2품은 장관급의 고위 공무직이므로 탐사자가 지나치게 공권력에 의지할 우려가 있어 당상관 품계는 탐사자로는 부적절할 수 있습니다. 탐사자에게 추천하는 품계인 당하관은 다시 참상관과 참하관으로 나뉘며, 탐사자들은 이조정랑, 병조정랑 등이 속해있으며 나랏님을 뵐 수 있는 계급인 참상관부터 고을의 현감, 현령으로 파견될 수 있는 참하관까지의 직책이 가장 적절합니다. 탐사자는 설정에 맞추어 다양한 폭의 부서에 속할 수 있으며 아래는 품계의 예시입니다. 단, 세자를 교육하는 기관인 시강원이나 세자를 호위하는 익위사, 세손을 교육하는 강서원이나 세손을 호위하는 형종사와 같은 부서 소속은 본 시나리오의 탐사 성격과는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의정부 (행정 총괄 기관) : 삼정승(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이 총괄하는 부서입니다. 해당 부서는 탐사자에게 추천하지 않습니다.
- 6조 (행정 집행 기관) : 의정부가 지휘하는 직속 기관으로 이조(관료 임명), 호조(세납과 공출), 예조(교육 및 외교), 병조(국방), 형조(사법과 법무), 공조(농상아문) 총 6개의 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탐사자에게 추천하는 품계는 낭관이라고 칭하는 정랑(정5품), 좌창(정6품)입니다. (예 : 이조 정5품 정랑, 병조 정6품 좌창)
- 의금부 (왕실 수사 기관) : 일상적인 사법을 담당하는 6조의 형조와는 달리 반역과 같은 왕실과 직접 관련된 일을 처리하는 국왕 직속 사법기구입니다. 본 시나리오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기관입니다.
- 사헌부 (행정 감찰 기관) : 언론 활동과 관리의 감사 및 탄핵을 도맡은 감찰 기관입니다. 당하관으로 참상관인 장령(정4품), 지평(정5품), 감찰(정6품)이 있습니다. (예 : 사헌부 정6품 감찰)
- 사간원 (왕에 대한 간쟁) : 왕이 내린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될 때 벌이는 언론 활동인 간쟁, 신하들과 일반 정치들에 관해 논하는 논쟁을 벌이는 언론 기관입니다. 당하관으로 참상관인 헌납(정5품), 정언(정6품)이 있습니다. (예 : 사간원 정5품 헌납)
- 홍문관 (문서 보관 기관) : 궁중 내에서의 문서 처리 및 관리와 더불어 학술과 국왕 자문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정책을 자문하는 일을 하는 부서입니다. 당하관으로 참상관인 응교(정4품), 교리(정5품), 수찬(정6품)과, 참하관인 박사(정7품), 저작(정8품), 정자(정9품)가 있습니다. (예 : 홍문관 정8품 저작)
중인
중인 계층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지방 유지와 비슷한 지위를 가진 계층으로 실무 능력으로는 양반보다 훨씬 낫습니다. 다양한 기술직을 맡는 계층인 만큼 과거 시험을 쳐서 잡과에 합격한 사람들은 전문 지식을 살려 관련 부서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들은 양반에 비하면 차별 대우를 받았으나 일단은 과거 시험에 합격하여 벼슬을 받은 신분이기 때문에 관료로서 대접받으며 나름대로 특권을 누렸고 또한 실질적인 업무를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고을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양반 계층인 고을의 현감이 해당 사건을 총괄하는 검시관을 맡는다면 실질적인 사건 조사와 피의자를 심문하는 일, 시신을 해부하고 검시하는 일들은 중인인 아전들이 도맡았습니다.
중인 계층은 중앙 정부에서 배치된 관료들을 보조하여 지방 행정의 주축이 되었으며 왕조의 전문 기술직으로, 보통 세습을 통해 기술을 전수받고 직업을 물려받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역관(譯官), 의관(醫官), 율관(律官) 등의 기술관들은 현대로 치면 통역사, 의사, 판검사 등에 해당되는 전문 기술직 관리 계층입니다. 관아의 아전 역시 이 계급에 해당됩니다. 탐사자들은 처음부터 시나리오의 배경이 되는 아검군 동위현의 관청에서 일하던 아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이번에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처음 이 마을에 파견된 향인일 수도 있습니다.
- 역관 : 통역과 번역을 담당하는 관리직으로 외교 관계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중요한 직책이었습니다. 현대로 치면 <언어(한문)>, <외국어> 기능 수치가 높은 통역사, 외교관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역관은 기술과 실무 능력은 물론 지식과 경제력 면에서도 양반 계층에 뒤지지 않는 계급으로 중인 중에서도 우대받는 계층이었습니다.
- 의관 : 국가의 의료 사업을 담당하였으며 내의원(왕실의 진료), 전의감(신하들과 병졸의 진료), 혜민서(한양 내 일반 서민들의 진료), 활인서(한양 내 전염병 환자와 죄수의 진료)로 나뉩니다. 역관과 더불어 중인 계층에서는 가장 대우받는 직책이었으며 <의학>, <약학>, <화학> 등의 기능에 능통할 것입니다. 이들은 때때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해당 사건이 일어난 지역으로 파견되어 시신을 해부, 검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 율관 : 형조를 보조하여 법률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관리직으로서 주로 법률의 조율을 담당하였으며, 율관의 조율을 토대로 실제 판결은 왕이나 문신 관료들에 의하여 이루어졌습니다. 율관 출신의 탐사자를 구상하고자 한다면 <법률>, <인류학>, <설득> 등의 기능치를 추천합니다.
- 향리 : 지방 관청에서 행정실무를 처리하는 하급 관인계층으로 왕조 통치기구의 말단 실무집행자로서 일반 백성들과 직접 접촉하여 그들로부터 세금을 수렴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중앙 정부의 명령을 받아 지방 행정을 맡았으며, <자료조사>, <회계> 등의 기능 수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양민
양인, 혹은 상민이라고도 부르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신분 질서에서는 농공상에 해당하는 계층이며, 조선의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계급으로 일반 백성들의 대다수가 여기에 속해 있습니다. 공민권을 가지는 대신 국가에 대하여 조세, 군역, 공납의 의무를 집니다. 법제적으로는 자유민이지만 직업과 경제력에 따라서 양인들 역시 복잡한 계층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과 생활에 필요한 각종 도구를 만드는 장인, 그리고 물건을 사고파는 상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천민
가장 낮은 계급으로 노비, 승려, 무당, 광대, 백정 등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비의 경우 아버지가 신분이 높더라도 어머니가 신분이 노비이면 그 자식도 노비가 되는 식으로 다른 계급과의 결혼이 불가하였으며, 관청에 소속된 공노비와 개인이 소유한 사노비로 그 종류가 나뉩니다. 그 외에도 향, 소, 부곡민이나 매를 길들여 바치는 생응간과 같은 몇몇 양인들은 신분 자체는 양민이지만 하는 일이 천하다는 이유로 천민 취급을 받는 경우도 존재했으며, 따라서 천민 출신의 탐사자는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몇몇 NPC들로부터 불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무당과 승려는 영험한 힘을 가진 존재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천민임에도 불구하고 높은 대우를 받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 이후 내용은 시나리오의 스포일러이며 수호자를 위한 정보입니다.
• 소재 주의 : 상해, 살해 및 사망, 잔인한 상황에 대한 자세한 묘사
• 본 시나리오에는 한국의 야담과 전설, 민속 신앙을 참고하여 만들어진 창작 신화생물이 존재합니다.
• 본 시나리오에는 실제 역사를 가공한 부분이 다수 존재하며 시나리오는 실존하는 역사의 내용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픽션입니다. 시간, 공간적 배경만을 차용한 가상역사 시나리오이며 역사와 시나리오의 내용이 충돌하거나 편의 상 이해가 어려운 세세한 설정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임의로 제외하거나 재편집하여 작성하였습니다. 따라서 실제 역사 고증이 맞지 않는 부분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탐사자나 키퍼가 도중에 중단하기를 원한다면, 휴식 후 플레이를 재개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 시나리오의 배경은 18세기 조선입니다. 탐사자들은 모종의 이유로 시나리오의 배경이 되는 아검군 동위현으로 흘러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캐릭터의 설정은 자유로우며, 탐사자의 신분은 플레이어가 원하는 방향으로 설정할 수 있으나 탐사자는 아검군 동위현으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영조 임금의 명을 받아 오게 되었다는 배경을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는 위에 나와있는 탐사자 가이드를 참고하면 더욱 수월하게 탐사자의 설정을 짤 수 있습니다.
• 시나리오의 공간적, 시간적 배경은 18세기 조선으로 고정되어 있으며 현재는 1761년 영조 37년 신묘(辛卯)년입니다.
• CoC 룰을 차용한 시나리오인만큼 탐사자에게 다소 악의적이고 위협적인 요소가 있으며 잔혹한 결말이 존재합니다. 또한 시나리오에는 잔인하고 끔찍한 상황에 대한 자세하고 생생한 설명이 존재하는 등 매우 높은 수위의 묘사가 등장하니 시나리오를 시작하기 전에 이에 대한 충분한 경고를 하고 동의를 얻은 뒤에 진행해주시기 바랍니다.
• 시나리오에 대한 문의는 (@I_can_do_iTRPG)로 받고 있습니다.
지문 / 키퍼 정보 / [핸드아웃]
[1] 진상
1761년 영조 37년 신묘년, 조선의 평안도 아검군 동위현에서는 최근 한 달 간 머리 깨진 시신들이 발견되는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민심이 급격하게 흉흉해졌습니다. 피해자 중에서는 동위현의 전(前) 사또였던 조승갑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범인을 찾기 위해서 나라에서는 급히 검시관을 임명하여 수사에 나서지만 발견되는 단서들과 범인의 흔적들은 하나같이 상식적이지 않은 기묘한 것들뿐으로, 도통 진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수사가 지지부진하던 그때, 조선의 백성들 사이에서는 사악한 요물이 사람을 해치는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 시작합니다.
한편, 한양에서 영조 임금은 세자 이선이 자신 몰래 평안도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보고받습니다. 세자는 경진년(1760년) 이후로 내관과 나인 백여 명을 죽이고 불에 달궈 지지는 악형을 가하는 등 그 행실이 몹시 난폭하여 이전부터 세자를 폐위시켜야 한다는 반교가 올라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세자가 평안도를 다녀온 뒤로부터 평안에서 머리가 깨져 그 잔혹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시신들이 발견되기 시작한데다가 세자가 궁궐 바닥에 군기붙이들을 묻어서 숨겨놓으려다 적발되는 일까지 벌어지면서 임금은 세자 이선이 평안도에서 백성들을 죽인 범인이고, 또한 세자가 사특한 무리들과 손을 잡아 역모를 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심을 품게 됩니다. 영조 임금은 이 일을 조사하기 위해 탐사자를 불러 동위현 사건의 범인을 밝혀내라는 명을 내리십니다. 다만, 금상은 세자의 일을 외부에 알리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에 탐사자들에게 세자에 대한 일은 비밀로 하기로 합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모든 일의 원흉이자 소문의 중심인 두억시니는 사실 이계에 존재하는 위대하고 불결한 신이자 오염의 근원인 압호스(룰북 P. 325)에게서 태어난 이형의 존재입니다. 압호스의 몸에서는 수많은 괴물들이 끊임없이 탄생하는데, 압호스는 그렇게 자신의 몸에서 태어난 괴물들을 붙잡아 다시 잡아먹는 기괴한 일을 반복하는 신입니다. 그렇지만 때때로 압호스에게서 태어난 괴물이 제 어버이에게 잡아먹히지 않고 도망치는 데에 성공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는 합니다. 이번 사건의 원흉인 두억시니 역시 압호스에게서 살아남아 독립한 괴물 중 한 개체입니다.
사건이 발생하기 한 달 전 평안도로 놀러온 세자 이선은 길거리를 돌아다니다 소년 장돌뱅이, 만득과 부딪쳐 넘어지고 그 와중에 세자의 사조룡 패가 들어 있는 호패주머니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천것과 부딪쳐 귀한 비단옷을 더럽힌데다 호패주머니까지 잃어버린 것에 화가 난 세자는 만득을 매우 치게 한 뒤 만득을 버리고 돌아갑니다. 곤장을 맞은 뒤 상처가 도진 만득은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고, 예전부터 만득과 알고 지냈던 약초꾼 갑식이 어떤 영문인지 죽어가는 만득을 안타깝게 여겨 무당 납매를 불러 만득이 무사히 낫기를 기원하는 굿을 하기로 합니다. 평안도의 다리굿은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를 오가며 죽은 넋과 산 자들을 달래주는 의식으로 납매는 죽어가는 만득을 위해 저승차사를 설득하여 돌려보내는 다리굿을 합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납매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 대신 압호스와 두억시니가 있는 이계와 연결되는 통로를 불러내고 맙니다. 이것은 결코 납매의 의도가 아니었습니다만, 어찌되었든 만득은 그렇게 불려온 두억시니에게 살해당합니다. 두억시니는 이계와는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새로운 신체를 갖기 위하여 만득을 습격하였고 그를 집어삼킨 뒤 죽은 만득을 껍데기처럼 두르고 다닙니다. 아마 세자 역시 의도한 바는 아니었을 테지만 세자의 횡포가 조선에 당도한 두억시니에게 때맞추어 새로운 껍질을 제공해준 것이나 다름없는 셈입니다.
동위현을 둘러싼 산에 둥지를 틀고 뿌리를 내린 뒤 만득의 시체를 뒤집어 쓴 두억시니는 만득이인 척을 하며 인간 행세를 하고 다니며 두억시니가 흉내내는 만득의 모습은 행동거지가 어딘지 어색하고 어긋나 보입니다. 그의 이웃이었던 마을 사람들에게 있어서 어느 날 이유 모를 큰 상처를 입고 돌아와 끙끙 앓던 만득이 결국 정신이 나가버린 일은 꽤나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2] 탐사자와 등장인물
탐사자들은 각자의 사정과 이유를 가지고 관서 지방에 위치한 아검군 동위현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탐사자는 동위현에서 벌어진 이 기묘하고도 끔찍한 사건을 해결하고자 파견된 새로운 현감이거나 복검관, 삼검관으로 임명된 옆 고을의 군수일 수도 있고, 이 사건을 해결하여 신분 상승을 노리는 야욕 많은 아전이거나 노비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이 사건으로 인해 소중한 가족을 잃은 농민이 복수를 하고자 범인을 찾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군요. 어찌되었든 탐사자들은 영조의 명령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려는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진행하게 됩니다. 또한 이 사건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탐사자든 이 일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 탐사자든, 탐사자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두억시니에게 신선하고 새로운 식사거리로 인식된 상황입니다. 두억시니는 한 번 점찍은 사냥감은 절대 놓치지 않는 집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위현을 감싼 불길한 소문의 정체를 알아내고 두억시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순전히 탐사자의 행보에 달려 있습니다.
탐사자 일행은 서로 다른 신분이나 성별로 구성될 수 있습니다. 조선은 신분과 성별의 구분이 엄격한 사회였지만 이러한 고증은 어디까지나 시나리오의 즐거움을 더하는 요소로 사용되어야 하며 불쾌감을 주는 소재는 테이블에서 따로 조절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고증은 시나리오에 생생함을 더하고 탐사자들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그들을 방해하는 하나의 장치로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지 실존하는 차별을 정당화, 합리화하거나 세션의 참가자들이 서로 불쾌감을 느낄 만한 일에 사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점을 유의해서 수호자는 탐사자들에게 충분한 논의와 동의를 구한 뒤에 세션을 진행해주세요.
젊은 장돌뱅이, 만득
근력 60 / 건강 - / 크기 60 / 민첩 65 / 지능 40 / 외모 35 / 정신력 60 / 교육 20
관찰력 50%, 말재주 40%, 항법 50%, 예술/공예(목수) 40%
만득은 빈말로라도 썩 호감을 주는 외모는 아닙니다. 다만, 두억시니에게 쓰이기 전에는 그래도 지금보다 더 서글서글하고 싹싹한 인상을 주는 열여섯 청년이었습니다. 죽고 나서 두억시니의 껍데기로 이용당하게 되고 난 뒤로부터는 두 눈은 푹 꺼져 썩은 동태 눈깔처럼 보이고 양 뺨은 퀭하게 패여 마치 시체와 같은 인상을 줍니다. 두억시니가 만득의 행세를 하고 다니게 된 이후로는 어딘가 말투가 어눌하고 항상 기분 나쁘게 헤죽대며 상대를 무례하게 쳐다보고는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만득을 보며 '어디서 크게 다쳐와서는 다 죽어가는가 싶더니 광인이 되어 돌아왔다'며 그를 피해 다닙니다. 혹자는 만득이 요즘 동위현을 흉흉케 하는 요물에게 죽을 뻔 하여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니냐며 수군댑니다.
현재 만득은 사망한 상태이며, 그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두억시니가 그의 시체를 뒤집어 쓰고 살아있는 사람 행세를 하고 다니는 것에 불과합니다. 탐사자가 이 사실을 깨닫게 되면 만득은 아래에 나와 있는 두억시니로서의 본색을 드러내어 탐사자를 공격할 것입니다.
두억시니, 머리를 으깨는 괴물
근력 130 / 건강 200 / 크기 130 / 민첩성 120 / 지능 30 / 정신력 50
체력 - , 피해보너스 +2d6, 체구 3
은밀행동 70%
근접전(격투) 45%, 붙잡기(행동 불가) 50%> 으깨기/짓누르기(1d6+피해보너스) 25% - 두억시니는 강력한 근력을 바탕으로 붙잡은 인간의 머리통을 짓눌러 부순 뒤 거기서 흘러나온 뇌수를 마시는 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억시니는 총 2턴에 걸쳐 한 턴에는 인간을 붙잡고 다음 턴에 붙잡은 인간의 머리를 짓눌러 으깹니다. 으깨기/짓누르기에 당한 인간은 두개골 골절을 입게 되며, 근력 대항 판정을 통해 두억시니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옆 사람이 도울 수도 있습니다. 이때 피해를 입은 탐사자는 3d30 주사위를 굴려 나온 숫자만큼 n일 간의 치료를 받고 안정을 취하면 회복할 수 있습니다.
두억시니는 인간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괴물로, 현재는 그 거대한 몸집을 만득의 시체 안에 욱여넣고 있는 상태입니다. 또한 두억시니는 물리적인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제아무리 힘센 장정들이 모여 몽둥이로 내려친다 한들 꿈쩍하지 않으며 자신을 보고 놀라 도망치는 사람들의 뒤를 쫓아 그들의 머리를 으깨어 죽입니다. 한 번 인간의 피를 맛 본 두억시니는 이후로도 시도때도 없이 인간을 덮쳐 그들의 머리를 짓누르고 거기서 흘러나온 뇌수를 즐깁니다. 수호자는 세션을 진행하면서 중간중간 이에 대한 암시나 단서를 줄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진행하면서 탐사자는 군졸들을 이용해 두억시니를 잡으려 하거나, 공권력의 힘을 빌리려 할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두억시니는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상처입힐 수 없으며, 그것은 애꿎은 사상자만 늘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순박한 약초꾼, 갑식
근력 50 / 건강 65 / 크기 45 / 민첩 50 / 지능 45 / 외모 70 / 정신력 50 / 교육 30
관찰력 60%, 오르기 40%, 응급처치 40%, 자연 50%, 약학 40%
갑식은 홀어머니를 모시며 뒷산에서 캔 약초를 장에 내다 팔아 그걸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 약초꾼입니다. 꼬질꼬질하고 늘 옷은 흙투성이로 지저분하지만 성미가 온순하고 순진한 면이 있습니다. 정이 깊어 다친 마을 사람들을 위해 값을 받지 않고 약초를 구해다 주기도 하는 착한 성품의 소유자입니다.
갑식은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장돌뱅이 일을 하고 있는 만득을 가엾게 여겨 그를 종종 보살펴 주었으며, 만득은 갑식의 약초를 대신 도성에 가서 팔아주고 오는 등 둘은 상부상조하며 지내는 친밀한 사이였으나, 어느 날 갑자기 만득이 크게 다쳐와서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는 것을 걱정하여 갑식은 지금도 종종 만득을 위해 상처 치료에 좋은 약초를 캐어다 주고는 합니다. 현재 갑식은 끙끙 앓다 못해 결국 정신이 나가버린 만득을 걱정하고 있으나 만득이 세자 저하에게 장을 맞았다는 사실이나, 죽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합니다.
영특한 어린 무당, 납매
근력 40 / 건강 50 / 크기 40 / 민첩 55 / 지능 75 / 외모 70 / 정신력 80 / 교육 40
심리학 50%, 오컬트 70%, 설득 50%, 말재주 40%
이제 겨우 열일곱이 된 어린 무당으로,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다리굿을 통해 압호스가 거주하는 이계와 연결되는 다리를 불러낸 장본인입니다. 납매는 어릴 적 자신의 신어미이자 스승이었던 태화(太和)라는 이름의 무당으로부터 직접 다리굿을 하는 방법을 전수받았습니다. 태화는 사실 사악한 주술에 조금이나마 일가견이 있는 무당으로, 납매가 전수받은 다리굿도 사실 이계의 신이 몸소 강림할 수 있도록 다리를 만들어내는 비술(룰북 P. 254 관문 생성)이었습니다. 그러나 태화의 도력은 얄팍한 수준이었던 데다 이 사특한 비술 자체가 불완전했던 것인지라 여태까지 이 비술이 성공했던 적은 딱 한 번을 제외하고는 없었습니다만, 태화의 제자였던 납매는 무당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히 이계로 향하는 다리를 불러내는 것에 성공한 것입니다.
납매는 뒤늦게 제 신어미가 제게 가르쳐준 다리굿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옛날옛적에 사라진 태화의 흔적을 좇아 이계와 연결된 통로를 닫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이 통로를 그대로 내버려둔다면 언젠가 두억시니처럼 사람을 해치는 요물들이 더욱 늘어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납매는 만득이 죽었다는 사실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굿으로 인해 무언가 사악한 존재가 만득에게 씌였다는 사실은 직감하고 있습니다.
동위현의 전 현령(縣令), 조승갑
시나리오가 시작되는 시점에서의 조승갑은 이미 고인입니다. 조승갑이 사망하기 전의 피해자들은 대부분이 가난하고 가족이 없는 자들이거나 걸인들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신경쓰는 이가 없어 수사가 뒤늦게 시작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견된 시신의 수가 스물아홉 구에, 이들을 살해한 범인의 수법이 워낙에 잔인한 지라 동위현의 백성들 사이에서도 유명한 사건이었습니다. 게다가 관아에서 이 사건을 수사하던 종5품 현령직의 양반인 조승갑마저 살해당하면서 사건의 심각성은 더욱 커졌습니다. 조승갑은 최초의 양반 출신 피해자이며, 동시에 가장 최근에 살해당한 서른번째 피해자입니다. 탐사자들이 맨 처음 검시하게 되는 시신이기도 합니다.
조승갑은 살아생전 이 사건을 조사하면서 어렴풋이 두억시니가 괴력난신의 존재임을 직감하고 있었으며, 비밀리에 그것을 물리칠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탐사자는 시나리오를 진행하며 조승갑이 준비해둔 물품들을 발견할 수 있으나, 하위의 아전들은 조승갑이 어째서 이런 물건들을 준비해놓았는지 알지 못합니다.
[3] 도입
개성과 함께 손꼽히는 상업지역인 평양은 북촌에는 으리으리한 기왓집이 즐비해있고, 시전이 즐비한 커다란 중심 시장인 관전장(館前場)에는 쌀, 콩, 보리 등의 곡물이면 곡물, 비단이면 비단, 옹기면 옹기가 잔뜩 쌓여 있습니다. 또한 길마다 위치한 주막들은 하나같이 나그네들로 시끌벅적하니, 과연 감사 중에서도 평양 감사가 으뜸 가는 꽃보직이라는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즈음 평양을 둘러싼 관서지방은 괴이한 소문이 돌아 민심이 상당히 흉흉해져 있습니다. 동위현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아직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현령, 조승갑마저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백성들의 불안감은 극에 치달았습니다. 탐사자는 이러한 민심을 수습하고 극악무도한 사건의 범인을 잡기 위해 영조 임금으로부터 이 사건의 해결을 명령받고 이곳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탐사자는 현재 사건이 일어난 지역인 동위현으로 가는 길에 올라 있으며, 평양의 한 주막에 모여있는 상황입니다. 긴 여행길에 지친 말을 대신하여 새 말을 빌리기 위해 마계(馬契)에 가기 전에 잠깐 주막에 들렀다는 설정도 괜찮고, 본격적으로 사건을 수사하러 가기 전 마지막으로 술이나 한 잔 하고 가자는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오게 되었다는 것도 괜찮습니다. 현재 시각은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으로 테이블 내에서 적절하게 상황을 조율해주세요.
탐사자가 방문해있는 이 주막은 국물 맛이 깊고 구수한 탕반으로 유명합니다. 탕반을 주문한다면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고소한 국밥에 아삭아삭한 깍두기가 밑반찬으로 내어져오며, 원한다면 막걸리를 한 병 시켜도 됩니다. 이곳의 주모는 손님에게 무척 살갑고 싹싹한 성격으로, 주문한 음식을 내오며 탐사자에게 척 보아하니 이곳 사람은 아닌듯 한데 어디서 오셨냐고 친근한 평양 사투리로 말을 붙입니다. 관서지방 사투리를 구사하기 어렵다면 적당히 그렇다는 내용의 지문만 탐사자에게 전달해주어도 무방합니다.
주모는 요즘 주막에 손님이 줄어서 형편이 꽤 힘들어졌다는 둥, 그래도 손님들 같이 멀리서 오신 분들 이야기를 듣는 게 가게를 하는 낙이라는 둥 소소한 주제를 필두로 탐사자와의 대화를 이끌어냅니다. 그리고 탐사자의 대답 여하에 따라 적절한 시점에서 요즘 이 근방에서 도는 흉흉한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냅니다.
"요 한 달 동안 평안도 동위현에서만 사람이 서른이나 죽은 건 알고 있시요? 아주 그냥 무서워 죽갔어. 나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귀신의 소행이라는 소문도 자자하다니까? 귀신이라면 나쁜 놈들이나 확 잡아가야 하는 거 아니갔어?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죄없는 사람만 죽어나가고 있으니, 만약 고것이 귀신이라면 그 중에서도 아주 요사스럽고 간특한 것인 게 분명해."
주모는 이 소문 덕분에 손님이 줄어든 것 같다고 투덜거리는 등 이번에 일어난 살인사건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이제 탐사자는 자유롭게 롤플을 하거나, 주모의 말을 들은 주막의 사람들이 탐사자에게 이 주제를 바탕으로 말을 붙여옴으로써 정보를 전달받아도 무방합니다. 주막의 사람들은 대부분이 아까 주모의 말처럼 사악한 요물이 사람을 해치고 다니는 것인 게 분명하다며 떠들어댑니다. 아무래도 백성들 사이에서 퍼진 흉흉한 소문이라는 게 바로 이것인 모양입니다. 만약 여기서 탐사자에게 좀 더 자세한 정보와 암시를 주고 싶다면, 아래의 표를 적절히 참고할 수 있습니다.
- 그것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늙은 것과 어린 것을 구분하지 않으며, 그저 사람이라면 죄다 보이는 대로 잡아먹는다고 하더라.
- 옆집 덕순이네 아비도 밤에 산길을 내려오다 그것에게 당하고, 덕순이네 어린 동생도 늦은 밤까지 제 아비를 기다리다 잡아먹혀서 그 집은 지금 줄초상이 났다더라.
- 그 놈은 힘이 어찌나 장사인지, 사람도 그냥 휙휙 집어던진다더라.
- (탐사자 중에 양인이나 천민이 섞여 있다면) 이제까지 고 귀신 놈은 우리같은 잡것들을 주로 노려왔다고 하던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번에 희생된 사람은 양반이라고 하더라. 이걸로 탐관오리들이 벌벌 떠는 꼬라지를 보고 있자하니 속이 다 시원하긴 하다.
소문의 대부분은 출처가 불확실한 것들이며, 만약 탐사자가 소문에 대해 떠들어대는 이들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묻는다 해도 사람들은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잘 알지 못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 달 동안이나 사또와 아전들이 누가 범인인지 잡겠다며 열심히 동분서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누가 저지른 일인지 밝혀지지 않았으니 오히려 사람이 아니라 귀신의 소행일 수도 있지 않느냐며 소문을 맹신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탐사자는 이후 목적지인 동위현으로 향할 수 있습니다. 동위현의 관아는 동쪽으로 한 식경에서 두 식경 정도만 걸으면 금방 나오므로,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습니다.
탐사자가 주막을 나오면, 탐사자는 한 노랫소리를 듣게 됩니다. 노래의 주인은 푹 쉬어서 쇠를 긁어내리는 듯이 불쾌한 목소리로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기묘한 음정과 박자를 가진 콧노래를 흥얼흥얼댑니다. 노래의 출처를 찾아 주위를 둘러보면, 차라리 맨발로 다니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헤어빠진 짚신을 신고 상투를 풀어헤친 채 터벅터벅 장터를 가로지르는 한 남자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퀭하게 패인 볼과 썩은 동태같은 눈깔. 보기만 해도 불쾌해지는 인상입니다. 남자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이윽고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 사라집니다. 탐사자는 주변의 사람들이 남자를 두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저놈의 장돌뱅이, 정신이 아예 나가버려서는. 천득인지 만득인지, 고놈 노래 듣기 싫어 죽겠네."
[4] 쉼재고개
이 고개는 경사가 무척 가파르기 때문에 쉬엄쉬엄 가야 하는 고개라고 하여 쉼재고개라는 이름이 붙은 곳입니다. 쉼재고개로 들어서는 입구 앞에는 돌을 깎아 세워진 어떤 짐승의 상이 떡하니 버티고 서있습니다. 돌상은 비늘이 돋은 사자의 몸통을 가지고 있고 발톱은 둘로 갈라졌으며, 겨드랑이에는 날개가 돋아 있고 목에는 방울을 달고 있는 동물의 형상입니다. <지능> 판정 등을 통해 이것은 해태를 본따 만든 돌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짐승의 상은 어찌된 영문인지 이곳저곳 금이 가 있어 서있는 것조차 아슬아슬해보이며 머리 부분은 아예 깨져 버렸는지 방울이 달린 목 위로는 머리가 아예 없는데, 이것이 꽤나 흉측하고 기괴하여 썩 보기 좋지는 않은 모양새입니다. 본래 해태는 부정한 것을 막는 수호신으로 알려져 있어 마을 입구에 해태의 상을 세운다는 것은 마을에 나쁜 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는 주술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수호신의 상의 머리가 깨져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징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짐승의 상을 지나쳐 쉼재고개로 들어서면 산길을 둘러싼 수풀이 바람에 흔들리며 내는 소리가 어딘가 으스스하게 들려옵니다.
쉼재고개를 절반 넘게 지나고 나면, 나무 사이로 바람 우는 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들리는 와중에 뒤에서 사박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아직 해가 하늘 한가운데 떠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소름이 끼치고 뒷목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듭니다. <관찰> 판정을 하려고 하는 탐사자가 있다면 해당 탐사자는 산 속에서부터 스산한 시선을 느끼는 동시에, 무언가 검은 그림자가 산 너머로 사라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황급히 뒤를 쫓으려 해도 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은 이미 도망쳐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습니다. 어려운 성공 이상의 판정이 나온 탐사자는 무언가 사람의 형상을 한 존재가 사람답지 않게 기괴하게 몸을 꿈틀대며 산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이성> 판정 (0/1d2). 이성판정은 어려운 성공 이상을 통해 기괴한 현상을 목격한 탐사자만이 실시합니다.
* 만득의 껍질을 뒤집어 쓴 두억시니가 탐사자를 인식한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제 탐사자들은 두억시니의 다음 표적으로 노려지게 됩니다. 두억시니는 발 빠르게 도망친 뒤이므로 뒤쫓아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탐사자가 사라진 그림자의 뒤를 쫓으려 해도 그림자는 이미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습니다. 아까까지 검은 그림자가 탐사자의 뒤를 쫓아왔다는 사실이 거짓말같이 바람만 황량하게 휑휑 불어댈 뿐입니다.
그림자가 사라진 뒤에는 더이상 아무것도 쫓아오는 것이 없습니다. 숲 속에 감도는 불길하고 음습한 기운을 떨치고 쉼재고개를 넘어서고 나면, 눈 앞에 개울이 흐르며 돌로 만들어진 다리 하나가 보입니다. 다리 너머로 곳곳마다 초가집이 보이고 집집마다 아궁이에서 불이 올라오며 그 중심에 관아 건물이 서있는 걸 보아하니 저곳이 바로 우리의 목적지인 동위현인 것 같습니다.
[5] 관청
현재 시간은 햇빛이 낮고 길게 내리쬐는 신시(申時)로, 대략 오후 3시에서 5시 정도 되었습니다. 동위현 관청에 도착한 탐사자를 맞이하기 위해 수염을 짧게 기른 왜소한 몸집의 이방이 찾아와 탐사자들의 호패를 검사하여 신분을 확인하거나, 탐사자가 사건의 수사를 위해 찾아온 이들이 맞는지 여쭙고 확인합니다. 동위 이방은 꽤 속이 좁고 눈치가 빠르며 잽싼 인물입니다. 탐사자가 양반이라면 이방은 연신 몸을 굽신거리며 아부를 해댈 것이고, 탐사자가 양민이나 천민이라면 짐짓 거만한 체를 하며 탐사자를 설렁설렁 대합니다. 탐사자는 앞으로 머물게 될 객사로 안내받게 되며, 이방은 짐을 풀고 관청을 다 둘러보고 나면 작청에 와서 자신을 불러달라고 말하고는 아전들이 근무하는 작청으로 돌아갑니다. 탐사자가 둘러볼 수 있는 관아의 내부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객사(客舍)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내려온 사람들이 머무는 숙소입니다. 객사는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정당(正堂)을 중심으로 좌우에 날개칸인 익실(翼室)이 배치되어 있는 구조입니다. 탐사자가 머무는 방은 익실의 방 중 한 방입니다. 탐사자는 익실 중 하나를 안내받으며, 그곳에 짐을 풀 수 있습니다. 위패가 모셔져 있는 정당은 기와와 돌이 깔려 있으며 손님이 머무는 익실은 온돌이 깔려 있어 바닥이 뜨끈합니다. 만약 익실에 들어와 <관찰> 판정을 하려는 탐사자가 있다면 방바닥이 새로 발라져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방바닥에 발려진 기름 먹인 종이를 슬쩍 들어내보면, 바닥에 검붉은 자국이 드문드문 떨어져 말라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국은 이미 말라붙은지 오래된 것 같습니다. 이 자국은 이미 예상하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말라붙어 검게 변색된 핏자국입니다. 이 자국은 세자 이선이 잘못을 저지른 제 아랫것들을 학대하던 흔적입니다. 관아의 아전들에게 이 자국이 어찌하여 생긴 것인지 물으면 아전들은 눈치만 보며 쉽사리 입을 열지 않습니다. 아전들에게 <설득>, <말재주> 등 적절한 판정을 통해 성공하면 그들에게서 어렵사리 한 달 전 세자 저하께서 이곳에 머물다 가셨는데, 저하께서 아랫것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종종 그들의 버릇을 고쳐주겠다며 매타작을 하고는 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 관아의 사람들은 세자의 얼굴을 알고 있습니다. 한 달 전 세자가 객사에서 머물다 갔기 때문입니다.
동헌(東軒) 지방관아의 정무가 행해지던 곳이며, 조승갑이 업무를 수행하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동헌은 목조 주심포 구조에 팔작지붕을 가진 장중한 체제를 갖추고 있습니다.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는 온돌방이 있습니다. 방 안에는 매난국죽이 단아하게 그려진 병풍이 둘러져 있으며 오색빛을 띠는 자개로 장식된 오동나무 장이 위치해 있습니다. 장을 열어보면 그 안에는 붓, 먹, 벼루따위의 문방서우가 들어있습니다. 장 옆에는 유학을 논하는 서책들이 꽂혀있는 책장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벽에는 붓에 먹과 물을 흐붓하게 먹여서 그려낸 탐스러운 서화가 걸려있습니다. 서화에 그려진 것은 금강산의 아름다운 풍경이며, 그 옆에는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서화에 쓰여진 글귀를 읽는 것에 대한 여부는 탐사자의 자유이며, 만약 탐사자가 서화에 쓰여진 시를 읽고자 한다면 <언어(한문)> 판정을 하거나 <교육> 판정을 하여 서화에 쓰여진 시의 내용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글귀의 내용과 뜻은 다음과 같습니다.
[一萬二千峰 高低自不同
일만이천봉 고저자부동
君看初日出 何處最先紅
군간초일출 하처최선홍
금강산 일만이천 봉의 높고 낮음이 저마다 같지 않네
그대는 보았는가 첫번째 해돋이를
그 어느 곳이 가장 먼저 붉어지던가?
(…)
동쪽에서 시작된 피바람은
인간의 소행인가 악신의 소행인가?]
* 이 서화는 조승갑이 직접 써서 걸어놓은 것입니다. 조승갑은 두억신의 존재를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으며, 이 서화는 자신이 의심하고 있는 것을 직접 글로 써서 남겨놓은 것입니다.
형옥 관아의 입구 앞에 둥근 담으로 둘러쳐져 있는 감옥입니다. 형옥에는 꽤 많은 수의 죄인들이 갇혀 있습니다. 이곳에 갇힌 죄인들 중 몇 명은 한 달 전, 세자의 패악으로 인해 벌을 받고 갇힌 사람들입니다. 만약 탐사자가 그대로 형옥 밖으로 나가려고 한다면, 고초를 당했는지 얼굴이 헤쓱하고 피골이 상접한 죄인 한 명이 갈라지는 목소리로 소리칩니다. "나으리!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높으신 분의 호패주머니를 잃어버린 죄 백 번 죽어 마땅하나, 이곳에 갇히게 된지 벌써 한 달째입니다. 집에서 어린 자식들이 오매불망 저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주세요!"
탐사자가 죄인이나 형옥을 관리하는 문지기나 다른 관계자에게 그 높으신 분이 누구시냐 묻는다면, 한 달 전에 한양에서 세자 저하께서 이곳으로 놀러오셨었는데 당시 동위현에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자였던 저 죄인이 그 분의 짐을 관리하다가 그만 그 분의 호패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고 대답합니다. 죄인은 결국 호패 주머니를 찾지 못하여 그 죄로 곤장을 맞고 이곳에 투옥되었으며 세자 저하는 한양으로 돌아가신지 오래라는 말도 덧붙입니다. 탐사자가 암행어사거나 당상관 이상의 고위직이라면 그 자리에서 즉시 불쌍한 백성을 구해줄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나,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양반이라 해도 함부로 죄인을 풀어주어서는 아니 될 일입니다.
* 세자는 현재 한양에 있는 궁으로 돌아간 상태입니다. 세자는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만득의 집 앞을 지나던 도중 만득이와 부딪쳤는데, 그때 우연히 호패 주머니를 떨어트려 패를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세자가 잃어버린 사조룡 패는 여전히 동위현에 있는 만득의 집 마당 어딘가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작청(作廳) 각 관청에 근무하는 하급관리들이 일하는 곳으로, 강산루(江山樓)라는 패가 걸려 있는 2층의 누문으로 이루어져 위풍당당한 기세를 뽐내는 외삼문 안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관찰> 판정 등을 통해 어디선가 미세하게 매캐한 탄내가 나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잿가루가 흩날려 떨어져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잿가루의 근원지를 찾아 자세히 살펴보면 2층 문루를 떠받치는 기둥 아래에 잿더미가 쌓여 있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책을 태운 것인지 잿더미에는 타다 만 종이 조각들이 보입니다. 그중에는 그나마 덜 타서 내용을 알아볼 수 있는 조각 하나가 눈에 띕니다.
…하여 종묘사직을 뒤흔들고 이 나라의 근간이 되실 세자 저하를 음해하는 불온서적들은 싸그리 모아 이 문서와 함께 불에 태워라.
잿더미는 세자의 행동거지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책들을 불태운 흔적입니다. 저자는 알 수 없으나 비판의 수위가 도를 넘다 못해 감히 세자를 신랄하게 비웃고 욕하는 망측한 내용인지라, 차마 그대로 내버려두지 못해 불에 태운 것입니다. 다만 책들은 이미 거진 불에 타서 내용은 알 수 없습니다.
이제 얼추 준비가 끝난 탐사자는 작청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방의 안내를 따라 가장 최근에 사망한 피해자인 조승갑의 시신이 보관되어 있는 청사에 갈 수 있습니다. 그 사이 안내를 맡은 이방은 청사로 향하는 내내 가벼운 입을 쉬지 않고 놀리며 이번 사건에 대해 연신 옆에서 조잘대며 다음과 같은 정보들을 탐사자에게 전합니다.
- 피해자들은 대부분 가족이나 연고(緣故)가 없는 걸인들이거나,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들어온 어린아이거나, 나병촌에 모여 살던 빈민이었다. 동위의 관아에서는 이 사건을 누군가 고의적으로 이들을 연쇄적으로 살해한 중범죄라 판단하고 수사인력을 꾸려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 그러나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지 사흘도 채 지나지 않아 사건의 초검관을 맡았던 동위 현령, 조승갑이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태까지 양민과 천민, 소외 계층을 노리고 벌어진 살인인 줄로만 알았던 이 사건은 양반인 조승갑의 죽음을 계기로 수사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범인은 남녀노소, 양반과 천것을 가리지 않는다.
- 조승갑은 첫 시신이 발견된 장소였던 범엣골이라는 산골짜기 아래에서 이틀 전, 머리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채 발견되었다. 조승갑 어르신께서는 아마 시신을 확인하러 가셨다가 봉변을 당한듯 하니 탐사자들 역시 주의해야 한다.
- 그 외에도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시신들을 초검하여 정리한 정보들은 청서 안에 놓아둔 검시책인 시장(屍帳)에 낱낱이 기록되어 있다.
[6] 청사
청사 안은 깨끗이 치워져 한가운데에는 조승갑의 시신이 상 위에 눕혀져 있습니다. 시신의 옆에는 검시를 위한 도구들이 정갈하게 마련되어 있으며, 조승갑이 사망하기 전에 발견된 피해자들의 시신을 검시하여 시신의 상태를 기록해둔 도서인 시장이 놓여있습니다. 또한 아전 한 명이 탐사자의 심부름을 위해 청사 안에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검험관 인력으로 임명되지 않은 하급 아전에 불과하므로 수사에 결정적인 도움은 되지 못 할 것입니다. 이제 탐사자는 조승갑의 시신을 검시하고 초검시장 안에 기록된 검시 기록들을 살피며 조사할 수 있습니다.
조승갑의 시신 사후 경직이 일어나 이미 뻣뻣하게 굳어가기 시작한 시신입니다. 몸 이곳저곳에는 피가 굳어 검게 변색된 채 묻어 있어 상당히 끔찍한 몰골입니다. 탐사자들은 이전에 시신의 상태와 사건의 끔찍함에 대한 것을 사전에 통보받았을 것이므로, 시신을 보고 이성 판정을 할 것인지의 여부는 탐사자의 성향과 수호자의 재량에 따라 결정합니다. 심약하고 시체에 대한 내성이 없는 탐사자라면 충분한 마음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시신을 보고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이때 <이성> 감소 수치는 (0/1d2)입니다. <관찰> 판정을 한다면 시신의 상태가 딱 보아도 얻어맞은 듯 푸르기도 하고, 붉기도 하고, 누르기도 하고, 희기도 합니다. 특히 왼쪽 뺨과 머리 정수리 좌측에는 피부가 벗겨진 상처가 있어 무언가로 세게 강타당한 듯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의학> 판정 등을 통해 이러한 시반은 구타살해를 당했을 때 나타나는 흔적과 유사하며,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사인은 머리에 난 상처인 것이 확실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체의 뒷면 왼쪽 뇌에 다친 자국이 딱딱하고 검으며, 왼쪽 뺨이 다친 곳의 너비에 비하여 구멍이 깊습니다. 손으로 만져보면 움푹하고 딱딱하여 여전히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안에서 고여있다가 밖으로 꿀럭꿀럭 조금씩 흘러나오는 피는 이미 새까맣고 끈적하게 변해있어 시신의 부패가 시작된 것이 명백해 보입니다. 어려운 성공 이상의 판정이 나온다면 시신의 다친 자취는 몽둥이와 같은 둔기로 얻어 맞은 상처와는 미묘하게 다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무거운 돌 따위로 머리를 짓눌린 것 같습니다.
* 시신의 상태에 대한 서술은 조선시대의 법의학서에 기록되어있는 내용을 일부 발췌했습니다. 이것은 두억시니가 머리를 짓눌러 깬 상처입니다. 두억신의 한자어인 두억(頭抑)은 머리를 누른다는 뜻입니다.
검시 물품 시신의 옆에 검시를 위한 여러 약품과 도구들인 응용법물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술찌꺼기, 식초, 파, 매실, 감초, 백반, 은비녀 등과 같이 독을 검사하기 위한 물품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어째서 이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하얗고 깨끗한 무명천 여러 필이 곱게 접혀 구석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 아전에게 이 무명천이 무엇에 쓰려는 물건이냐 묻는다면, 아전은 조승갑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사흘 전에 준비하라 명하신 물건이라고 대답합니다. 다만 어디에 쓰려고 하신 건지는 알려주지 않으셨고, 어르신도 돌아가신 마당에 고인의 물건을 함부로 처분할 수 없어 일단 그곳에 쌓아둔 것이라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지능>, <교육>, <의학> 판정 등을 통해 검시 도구들을 이용할 방법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술찌꺼기와 식초를 시신에 씌우고 옷으로 덮은 다음, 끓인 술과 식초를 부으면 처음에는 시신이 훼손되어 보이지 않던 상처들이 드러납니다. 조승갑의 시신을 이렇게 하여 다시 보면, 목 부근에 손자국으로 추정되는 흔적이 떠오릅니다. 누군가 조승갑의 목을 강하게 움켜쥔 적이 있는 듯한 시반입니다. 손아귀의 크기는 재어보면 약 8촌(24cm) 정도로, 대략적인 크기로 보았을 때 손의 주인은 성인 남성인 것 같습니다.
* 만득의 껍데기를 뒤집어 쓴 두억시니가 조승갑을 습격하여 그의 목을 움켜쥐고 뒷산으로 끌고 들어간 흔적입니다. 이후 두억시니는 저항하는 조승갑을 구타한 뒤 머리를 으깨어 죽였습니다.
검시 기록 조승갑이 살해당하기 전, 다른 피해자들의 시신 초검 내용을 기록해둔 시장입니다. <자료조사> 판정을 하여 피해자들에게 공통된 사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모두 머리에 큰 상흔을 입었으며, 개중에는 얼굴과 두개골의 훼손이 너무나 심각하여 지니고 있던 호패로 간신히 신분을 구별한 시체도 있었다는 기록을 읽을 수 있습니다. 피해자들은 성별과 나이가 전부 일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맨 앞 장에 기록되어 있는 첫 피해자인 모자의 시신이 발견된 장소는 동위현을 둘러싸고 있는 산을 지나는 범엣골 앞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산길 앞 초가집에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며 매일 범엣골 산길을 지나 약초를 캐러 다니던 갑식이라는 약초꾼이 그 날 저녁 시체를 처음 발견하여 관아에 신고하였으며, 발견 당시에도 시신이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아 전날 술시(戌時), 그 중에서도 술정시인 저녁 8시 30분 즈음에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된다고 적혀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살해당한 피해자인 조승갑 역시 첫 피해자가 발견된 장소와 동일한 곳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일 최근 장에는 조승갑이 살해당하기 전 날, 마지막으로 남긴 기록이 쓰여 있습니다.
[사흘 전, 모자의 시신을 누여둔 범엣골 근처를 순찰하며 돌다가 괴이한 그림자를 발견하였다.
군졸들을 이끌고 근처를 다시 수색하였을 때는 감쪽같이 사라져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았으나, 군졸들을 물리고 다시 홀로 남아 근처를 서성이자 뒷산에서 무언가 꿈틀대는 형상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기묘한 것은 누여둔 모자의 시신을 노리는 듯 하다가 내가 크게 소리를 내어 꾸짖으니 놀라 달아났다. 혹여라도 그것이 나중에 돌아와 시신을 해할까 걱정이 되어 시신은 청사 안에 옮겨두기로 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로다. 그것이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내일 밤, 다시 범엣골로 가서 내 그것의 정체를 낱낱이 밝혀내고야 말 것이다.]
만약 탐사자들이 다른 시신들도 살펴보기를 원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시신들은 곳간 하나를 개조하여 마련한 청사 옆 다른 창고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첫번째 희생자였던 모자의 시신 역시 청사 옆에 딸린 곳간 안에 위치해 있습니다. 다른 피해자들의 시체는 초검관이었던 조승갑에 의해 이미 다 부검이 된 상태이며, 시장에 기록된 것과 일치하는 정보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시신들에게는 공통적으로 머리의 상흔이 존재합니다.
이후 탐사자들은 조승갑의 초검 기록을 읽고 사건의 조사를 위해 관아 북쪽에 위치한 범엣골로 향할 수 있습니다.
[7] 범엣골
범엣골은 본디 호랑이가 자주 출몰하여 사람을 물어간다는 소문이 있는 장소인지라 원래도 인적이 드문 곳이었지만, 시체가 발견되고 나서는 약초꾼 갑식이 살고 있는 초가집 아궁이에서 나오는 굴뚝 연기를 제외하고는 개미새끼 한 마리도 지나다니지 않습니다. 범엣골은 산이 깊고 나무가 많아 다른 곳보다 훨씬 침침하고 으스스합니다.
범엣골에 도착하게 되면, 탐사자는 숲 속의 나뭇가지가 갑자기 부산스레 흔들리는 것 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듣기> 판정을 하면 탐사자는 나뭇가지가 스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킥킥대는 듯한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를 내며 탐사자를 사사사삭 뒤쫓는 소리를 듣습니다. 소리의 정체를 찾기 위하여 <관찰> 판정을 하면 네 발로 뛰어다니는 짐승같은 검은 그림자가 숲 속에서 나타났다 사라졌다하며 탐사자의 뒤를 저 멀리서 쫓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성> 판정 (0/1d3). 극단적 이상의 성공을 한 탐사자는 네 발로 뛰어다니는 저 그림자가 얼핏 보기에는 짐승처럼 보이나 자세히 보면 사람같은 것이 네 발로 기어서 멀리서부터 탐사자를 뒤쫓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챕니다. 숲의 그림자에 가려 마냥 새까맣게만 보이는 저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묘하게도 핏발이 서서 시뻘겋게 충혈된 눈깔만큼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성> 판정 (0/1d4). 기괴하게 안광을 번뜩이며 탐사자를 쫓던 그것은 저 멀리서 탐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입꼬리를 주욱 찢어 올려 헤죽 웃습니다. 귀까지 찢어지듯 치켜 올려져 헤벌어진 입 안은 마치 두견새 입 안처럼 시뻘겋습니다. 탐사자의 뒤를 지네처럼 기어서 쫓아오던 그 형상은 탐사자와 눈이 마주치면 낄낄대는 웃음소리를 내며 숲 속으로 사라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깥의 소란스러운 기척을 느꼈는지 흙으로 꼬질꼬질해진 삼베옷을 입은 남성 한 명이 초가집 문을 열고 빼꼼히 고개를 내밉니다. 남자의 이름은 갑식으로, 범엣골 아래의 유일한 주민이자 이 사건의 첫번째 피해자인 모자의 시체를 발견한 사람입니다. 탐사자가 갑식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곳에 온 목적을 밝힌다면 갑식은 버선발로 후닥닥 뛰어나와 깍듯한 태도로 굽실거립니다. 딱히 먼저 밝히지 않아도 갑식은 이런 산골짜기 아래에는 무슨 일이시냐며 탐사자들을 반갑게 맞아줍니다.
갑식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하는 순박한 성격으로, 탐사자들의 취조와 물음에 협조적일 것입니다. 만약 탐사자가 갑식에게 아까 전 느낀 시선의 정체를 묻는다면 갑식은 되려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 주변에 사는 사람은 저와 제 어미뿐이라며 의아해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심리학> 판정 등으로 갑식의 태도를 살펴보면 갑식이 거짓을 고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갑식은 두억시니의 존재를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갑식의 어머니는 눈이 침침하고 가는 귀를 먹어 바깥 소식에 어두운지라, 요즘은 집 안에만 계십니다.
또한 범엣골 근처에 살고 있었던 호랑이들은 두억시니를 경계하여 이미 범엣골을 떠난지 오래입니다. 만약 <자연>, <추적> 등 적당한 기능치를 사용하여 범엣골 산기슭을 샅샅이 조사한다면, 탐사자는 호랑이가 살고 있다면 응당 발견되어야 할 짐승의 뼈나 발자국, 배변물따위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약초꾼 갑식이 탐사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 범엣골 아래에서 사는 주민은 나 한 명뿐이다. 범엣골은 호랑이가 나타나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라 사람들이 오기를 꺼려한다. 나는 약초를 캐서 먹고 사는 사람인지라 어머니를 모시고 단둘이서 이곳에 살고 있다. 범엣골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깊은 산이라 귀한 약초들이 많다.
- 모자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둘 다 숨이 끊어진 뒤였다. 저 아랫동네에 살고 있는 동네 장돌뱅이였던 만득이란 놈의 도움을 받아 약초를 장에 내다 판 돈을 받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산그늘 아래에서 무언가 시꺼먼 것이 시신 주변에서 꿈틀대는 것을 보았다. 저것이 무엇인가 싶어 멀찍이 서서 기웃거리고 있자니 내 기척을 눈치챈 그것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 자세히 보지는 못했으나, 그 새까만 것은 처음 보았을 때는 사람의 형상이었으나 나중에는 꾸물텅대는 기묘한 생김새로 바뀌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나이를 먹어 눈이 어둡다 보니 잘못 본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그러고보니 만득이라는 놈이 한 달 전에 크게 다쳐서 돌아오더니 그 뒤로 끙끙 앓다가 죽다 살아났는데, 하마터면 황천을 건널 뻔해서 그런가 정신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곤장을 얻어맞기라도 한 것인지, 볼기짝이 너덜너덜했다.
이야기가 끝나면, 갑식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탐사자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러고 보니 요즘 동네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던데, 저 아래 신당촌(神堂村)에 계신 아주 신묘하신 무당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사특한 요물이 산 자들을 해치고 다니는 것에 있다고 하덥디다."
"만득이 고놈도 그 요물에게 죽을 뻔하여서 정신이 나가버린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있습죠."
"저는 마을에 머무는 시간보다 산에서 풀뿌리를 캐는 시간이 더 길어 자세한 이야기는 잘 알지 못 하나, 신당촌에 가셔서 납매라는 이름을 가진 무당을 찾아 보십쇼."
"아주 용하기로 이름 높은 무당이니, 그 분이라면 쇤네보다 더 나은 이야기를 해주실 지도 모릅니다요."
갑식의 말을 귀담아듣고 신당촌에 납매를 찾으러 갈 것인지, 아니면 이토록 중대한 사건에 괴력난신의 도움을 받으라고 하는 갑식의 무지함을 못마땅하게 여겨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것인지는 탐사자가 선택할 일입니다. 신당촌은 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주욱 내려가면 나오며, 동위현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하는 탐사자라면 갑식이 길을 가르쳐줄 것입니다.
탐사자가 신당촌으로 가지 않겠다고 선언하면, 갑식의 입을 이용해 만득의 집으로 갈 수 있도록 유도해주세요. 신당촌으로 가지 않는 탐사자는 곧바로 [9] 만득의 집으로 넘어갑니다.
[8] 신당촌
신당촌은 입구부터 이름에 걸맞게 금줄이 잔뜩 둘러진 서낭바위가 한 쌍씩 마주보고 서있습니다. 무당들이 모여사는 곳답게 곳곳에서 신을 모시는 무속깃대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어린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순라잡기를 하며 놀고 있습니다. 순라잡기는 술래잡기 놀이의 원형이 되는 놀이입니다. 탐사자는 아이들이 까르륵 웃으며 부르는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한낮에는 금부관원 야밤에는 순라꾼"
"앞산에는 호환마마 뒷산에는 두억귀신"
"금부관원 싫거들랑 풀숲 사이 몸을 숨고"
"두억귀신 무섭거든 무당님을 모셔오세"
"머리 깨진 혼과 넋들 극락왕생 비나이다"
탐사자 일행 중에 양반이 있다면, 아이들은 탐사자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말을 걸기도 전에 부리나케 도망가버립니다. 얼마 전 세자가 마을에서 부린 패악질 때문에 아이의 부모들이 혹시라도 양반을 만난다면 반드시 피해다니라 신신당부를 해둔 탓입니다. 양반인 탐사자가 아이들을 붙잡아 이야기를 들으려고 한다면 <민첩> 판정을 통해 아이들을 도망가지 못하게 잡아둔 뒤 <설득>, <위협> 등의 대인기능 어려움 이상의 판정에 성공해야합니다. 실패하면 양반을 눈앞에 둔 불쌍한 아이들은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엉엉 울기만 합니다.
만약 일행 중에 양인이나 천민 출신의 탐사자가 있다면 아이들은 주뼛대기는 하면서도 도망가지는 않습니다. 이 노래는 신당촌의 아이들이 술래잡기를 하면서 부르는 노래로, 아이들에게 묻는다면 이 노래를 무당 납매가 굿을 하면서 부르던 것을 담장 너머에서 엿들었다는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아까 납매가 신당촌 안쪽에 있는 서낭골에 있는 계곡으로 올라가는 걸 봤다고 대답합니다.
그 외에도 탐사자가 납매를 찾기 위해 아이들 대신 주변의 사람을 아무나 붙잡아 납매가 어디있는지 묻는다면, 납매는 항상 매일 세 번 산신님께 기도를 올리러 자리를 비운다는 정보를 접할 수 있습니다. 신당촌의 주민은 납매가 항상 이맘때쯤이면 신당촌 안쪽에 위치한 서낭골에 있는 계곡으로 가 산신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는 하니 그곳으로 가면 납매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서낭골은 신당촌에서 계곡으로 올라가는 샛길을 따라 가면 나옵니다.
서낭골 울창한 숲이 우거져 바위 사이로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계곡입니다. 어찌나 경치가 좋은지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이 듭니다. 물은 매우 맑고 깨끗하며 손이나 발을 담그면 시원한 느낌이 정신을 맑게 해줍니다. 어찌나 맑은지 멀리서 보아도 물 속에 고기가 헤엄치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입니다. 계곡의 안쪽에는 무복을 가지런히 갖춰 입은 한 여인이 공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계곡 근처에 홀로 우뚝 서있는 소나무 앞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탐사자가 여인에게 말을 걸면, 여인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차분하게 일어나서 공손히 고개를 숙입니다. 탐사자가 여인에게 납매가 맞느냐고 묻는다면 여인은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납매는 본인이 산신님을 모시는 몸이고 얄팍하게나마 재주가 있긴 하나, 탐사자는 자신에게 무슨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왔느냐 묻습니다.
사실 납매는 눈치가 몹시 빠르고 도력이 탁월하여 신기가 있으므로 얼마 전 몸주의 하회를 받아 탐사자가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선은 본디 유학자들의 나라로 무당이나 귀신같은 괴력난신을 천대하는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를 알고 있는 납매 역시 자칫하면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에 상당히 조심스럽습니다. 탐사자에게 자초지종을 전해들은 납매는 탐사자에게 한 권의 책을 건네줍니다. 책의 이름은 천예록(天倪錄)으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어느 양반집 잔치에 더벅머리를 한 젊은 사내아이가 나타나, 주인이 종을 시켜 저 애가 뉘집 종인지 묻게 하였다.
그러나 사내는 답이 없었고, 종은 사내를 쫓아내려 하였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종 서넛이 달려들어 사내를 끌어내려 하였으나 무용지물이었다. 화가 난 주인은 장정 대여섯 명을 시켜 몽둥이로 사내를 때려 쫓아내게 시켰다.
그러나 사내는 여전히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 사내가 인간이 아님을 알고 모두 놀라며 두려워 했다.
한참 뒤에야 사내는 비웃음을 띄우고는 그 집을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집안 사람들과 잔치에 참여한 이들, 그 집의 노복과 종들이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는데 그 머리가 온통 깨졌다. 잔치에 갔던 사람들은 모두 죽어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였다.
세상에는 그 사내를 두억신(頭抑神)이라 부르는데, 그 귀신이 어디서 왔는지 도통 알 길이 없다.]
탐사자가 책을 다 읽고 나면, 납매는 탐사자에게 한 달 전에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털어 놓습니다.
- 만득이라는 장돌뱅이가 한 달 전에 어디선가 크게 다쳐와서 거의 죽을 뻔한 적이 있었는데, 의원에게도 다녀와서 치료를 받아왔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고 더욱 나빠지기만 했다. 그래서 이를 안타깝게 여긴 갑식이라는 약초꾼이 저에게 부탁해서 만득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굿을 해주기로 하였다.
* 만득이 다쳐온 부위는 머리가 아니라 볼기짝으로, 만약 탐사자가 만득이 정확히 어디를 다쳐서 돌아왔는지 묻는다면 이 사실을 강조해서 전달해주세요. 갑식을 포함한 마을 사람들은 만득이 사람들을 해치는 요괴에게 죽을 뻔하여 정신이 나간 줄 알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 그러나 다리굿을 한 후로 만득이 이상해졌다. 감히 자신의 부족한 식견으로 추측컨대, 자신이 스승이었던 태화에게 배웠던 다리굿으로 불러낸 다리를 통해 이 두억시니라는 요사스러운 것이 저세상에서 건너와 다쳐서 허약해져 있던 만득에게 쓰인 게 아닌가 싶다. 본디 귀신이라는 놈은 기가 허해진 자에게 잘 달라붙는다.
- 만약 자신의 추측이 사실이라면 만득을 데려와 하루빨리 그것을 만득의 몸에서 몰아내고 저세상으로 돌려보낸 뒤, 다시는 저런 것들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다리굿으로 연 저승의 문을 닫아야 한다. 그러니 감히 부탁드리오건대, 자신이 두억시니를 몰아내는 의식을 준비하고 있을 동안 탐사자가 만득의 집에 가서 만득을 데려와주었으면 한다.
납매는 이야기를 끝마치고 나더니 탐사자에게 이것을 받아보시라며 비단주머니 하나를 건넵니다. 주머니 안에 든 것은 다름아닌 옥에 네 개의 발가락을 가진 용이 새겨진 패입니다. <지능> 판정을 통해 사조룡이 상징하는 사람은 이 나라에서 세자 저하, 단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납매는 이것을 한 달 전, 만득을 위한 굿을 준비하다가 만득의 집 마당에 떨어져 있던 걸 자신이 발견했다는 사실을 전하며 어째서 이 귀한 물건이 만득의 집 근처에서 발견된 건지는 자신도 알 도리가 없으나, 미천한 자신보다는 탐사자가 가지고 돌아가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고 말합니다.
또한 납매는 탐사자가 만득의 집으로 가기 전, 품에서 황색 부적지에다 붉은 경면주사를 곱게 갈아 만든 염료를 먹 삼아 휘들어지게 적은 부적 몇 장을 꺼내 탐사자에게 각각 한 장씩 건네줍니다. 납매는 부적을 건네주며 이것은 자신의 몸주의 기운을 담아 만든 부적으로, 일시적이긴 하나 혹시 모를 부정한 것으로부터 탐사자를 보호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부분은 수호자의 재량에 따라 생략하여도 무방합니다.
이 부적은 납매의 도력을 담은 신묘한 물건입니다. 두억시니와 같은 이계의 존재들에게 받는 피해를 줄일 수 있으며, 장갑 수치는 1입니다. 두억시니와 같은 이계의 존재들과 세 번 접촉하면 부적은 순식간에 불타 재가 되어 흩어집니다. 단, 이 부적은 이계에서 온 존재가 아닌 심해인이나 구울, 뱀인간처럼 지상에 이미 자리잡은지 오래인 존재들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9] 만득의 집
반쯤 무너진 돌담에 둘러싸여 있고 억새를 얼기설기 엮어 지붕을 올린 뒤 황토로 벽을 바른 낡고 작은 한 칸짜리 초가집입니다. 가뜩이나 인적이 드물고 외딴 곳에 위치해 있어 영 찝찝한데, 땅거미가 어스름하게 져서 핏빛으로 물든 햇빛까지 불길하게 무너진 돌담 틈으로 새어들어오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거짓말처럼 느껴질 만큼 꽤 난장판입니다. 마당은 낙엽 등으로 어지럽혀져 있고 쓰러져 있는 빗자루는 마당을 쓸어본 게 상당히 오래 전인 듯 비가 숭숭 빠져 볼품없는 모습입니다. 좁은 마루 안쪽에 위치한 창호문은 문짝이 너덜너덜하여 반쯤 열려있고 창살 사이로 구멍이 뭉텅이로 뚫려있습니다. 부엌 문은 아예 열어 제껴져 있으며 바람이 휑휑 불어칩니다.
방 안 창호문이 너덜너덜해져서 뜯겨질랑 말랑한 상태이긴 하지만, 그래도 간신히 붙어있어 문짝 노릇을 하고 있긴 합니다. 반쯤 닫혀 있는 문을 열어서 방 안을 들여다보면 바구니가 널부러져 있고 풀 더미가 이리저리 흐트러져 널려 있습니다. <식물학>, <의학> 등의 적당한 판정을 한다면 이 풀들은 상처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지닌 약초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풀들은 대개 달여서 탕으로 마시는데, 어째 이곳에 있는 풀들은 전부 한 입씩 생으로 뜯어 먹힌 듯한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약초는 방치된지 꽤 시간이 지난 듯 말라 비틀어져 손을 대면 바스라집니다.
* 갑식이 만득을 걱정하여 가져다준 약초들입니다. 그러나 이 풀들은 인간의 살점과 피, 그리고 뇌수를 즐기는 두억시니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부엌 방 옆에 딸려 있는 자그마한 부엌입니다. 아궁이는 마지막으로 불이 때어진 지 한 달은 족히 지났을 것처럼 먼지가 쌓여 있습니다. 옆에 있는 장작도 마찬가지입니다. 땔감은 하루 치 정도가 남아있긴 하나 손길이 닿은 게 예전 일인 것처럼 먼지가 위에 엷게 쌓여 있습니다. 또한 솥뚜껑이나 나무그릇, 질그릇 등이 정리되지 않은 채 어지럽게 널려 있습니다.
마루 아래 마루 근처에 다가서면 탐사자의 발 아래 길쭉한 무언가가 툭 걸립니다. 만지면 바스라질 듯 말라 비틀어진 그것은 마루 아래에서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그것을 마루 밑에서 끌어내려고 시도하거나, 마루의 아래쪽을 살펴보려면 <관찰> 판정. 마루 밑에 인간의 시신으로 추정되는 것들이 팔과 다리를 얽어 저들끼리 뭉쳐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신들은 죄다 목 위의 머리가 없으며, 피가 모조리 빨려 나간듯 미이라처럼 비쩍 말라있는 모습입니다. 한 구, 두 구, 세 구… 열 손가락 안에 다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말라 비틀어져 쭈그라들은 시신들이 마루 밑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이 광경을 목격한 탐사자는 <이성> 판정 (1/1d4)
탐사자가 집 안을 둘러보고 나면, 탐사자의 뒤에서 길다란 그림자가 집니다. 뒤를 돌아보면 그곳에 낯이 익은 한 청년이 서있습니다. 청년은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을 씰룩대며 헤죽헤죽 웃고 있습니다. 시뻘건 햇빛이 뒤에서 비치고, 기괴하게 일그러진 얼굴에 그림자가 져서 한층 더 섬뜩합니다. 두 눈깔은 푹 꺼져서 썩은 동태처럼 보이고, 흰자는 핏발이 서서 충혈되어 있습니다. 청년은 눈깔을 데루룩 굴려 탐사자를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두견새처럼 벌려 웃으며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듯한 기괴한 음정과 박자의 콧노래를 흥얼댑니다. <이성> 판정 (0/1)
* 만득이 흥얼대는 콧노래는 도입부에서 처음 만득을 만났을 때 만득이 부르고 있던 그 노래로 압호스를 찬양하는 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러한 사실은 보통의 지식으로는 알 수 없습니다만, <크툴루 신화> 기능치가 20 이상인 탐사자라면 알아들을 수도 있을지 모르는 노릇입니다. 노래에 담긴 의미를 알아챈 탐사자는 <이성> 판정을 합니다. (1/1d4)
이 기분 나쁜 청년의 정체는 바로 이 집의 주인인 만득입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진짜 만득이 아니라 만득의 시체를 뒤집어쓴 두억시니이나, 그래도 기묘하기는 하지만 일단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두억시니는 인간의 흉내를 내기 위해 어설프게 말을 하는 시늉을 할 수는 있으나, 그것의 대부분은 단어의 뜻을 이해하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득은 히죽대며 탐사자의 말 끝을 구관조처럼 따라합니다. 때로는 의미없는 단어들을 빠르게 중얼거리고는 합니다. 따라서 그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있는 행동은 아닙니다.
탐사자에게 충분히 만득의 기이한 상태를 전달해주고 나면,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웃던 만득은 고개를 우둑, 우둑 꺾으며 탐사자를 기분 나쁘게 쳐다봅니다. 그리고 탐사자가 부적을 지니고 있는 곳을 뻔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입꼬리를 올려 헤죽 웃습니다. * 탐사자가 신당촌을 건너 뛰었다면 이 부분은 생략합니다. 기분 나쁘게 웃음 짓던 만득은 갑자기 관절을 기묘하게 뒤틀더니 별안간 네 발로 기어서 어디론가 뛰어가기 시작합니다. 수호자는 탐사자에게 만득이 뛰어가는 방향이 신당촌이 있는 방향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세요. 만득은 납매의 도력이 담긴 부적을 감지하고 그것에 이끌려 납매를 해치기 위해 신당촌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만득은 인간이 네 발로 기는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신당촌을 향해 탐사자로부터 멀어지며, 금세 탐사자의 시야에서 사라집니다.
[10] 납매의 신당
만득을 쫓아 신당촌으로 돌아오면, 어디선가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옵니다. 비명소리가 난 곳으로 항하면 문 한 짝이 뜯겨져 나가 너덜너덜해진 한 신당의 문이 반쯤 열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당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신당 안에는 곳곳에 액막이를 위한 물건들이 널려 있고 굿을 준비 중이었는지 신에게 바치는 신선한 꽃과 과일들이 상 위에 놓여 있습니다. 다만, 상의 제일 높은 곳에 높여 있어야 할 신상은 넘어져 있고 그 머리가 깨어져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습니다. 신상의 머리가 나뒹굴고 있는 곳 바로 옆에는 무복을 입은 한 여인이 머리에서 피를 흘린 채 엎어져 있습니다. 그 여인은 다름아닌 납매입니다.
쓰러져 있는 납매의 상태를 살펴보면 납매의 머리가 신상의 머리처럼 처참하게 짓눌려 으깨어져 있고, 머리 한쪽이 움푹 패여서는 그곳에서 피가 줄줄 흘러 나옵니다. 몸은 아직 온기가 남아있으나, 납매는 더이상 숨을 쉬지 않습니다. 맞닿은 살이 빠르게 식어가는 것이 여실히 느껴집니다. 눈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본 탐사자는 <이성> 판정 (1/1d4+1)
납매는 방금 전까지 굿을 준비 중이었는지 오른손에는 금방울을 쥐고 있고, 다른 쪽 손에는 책 한 권을 쥐고 있습니다. 이 책은 납매의 신어미이자 스승이었던 무당 태화가 직접 쓰고 숨겨둔 일지, 만신이천록(萬神异天錄)입니다. 다른 하늘에서 온 만 개의 귀신을 부린다는 의미로, 책은 한자로 쓰여 있으며 이를 읽기 위해서는 <언어(한문)> 판정이 필요합니다. 판정에 성공하면 납매가 쥐고 있는 책의 앞부분을 읽을 수 있습니다. 탐사자가 당장 읽을 수 있는 책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一月四日
본래 다리굿을 할 때는 이승과 저승을 잇는 다리에 영혼을 실어 저승으로 천도하는 의례를 행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를 건너서 망자는 저세상으로 갈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저세상의 존재가 이곳으로 다리를 통해 건너올 수도 있는 것이다.
一月十一日
나는 그 어느 경전에도 나와있지 않은 신묘한 도술을 터득했다. 삼도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열어 온갖 신들을 불러낼 수 있는 도술이다. 나는 딱 한 번, 귀신의 세계를 엿보고 온 천하의 진리의 끄트머리를 맛보았다.
二月六日
만약 이 비술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완전히 익히게 된다면, 나는 하찮은 무당 태화(太和)가 아니라 온 천지의 신을 부리는 만신(萬神)이라고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존재가 될 것이다.]
판정에 성공해서 만신이천록의 앞부분을 읽었든 실패해서 읽지 못했든, 탐사자가 책을 건드리고 나면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낡은 종이 한 장이 팔랑이며 떨어집니다. 종이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 납매가 한 달 동안 사라진 스승, 태화의 흔적을 좇아 간신히 찾아낸 비술입니다. 두억시니를 쫓아낼 수 있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귀신을 다시 저세상으로 돌려보내고 다리를 끊기 위해서는 몇 가지 준비가 필요하다.
一. 일단, 미리 다리굿을 해서 저세상의 문을 열어둔 다리가 필요하다. 이곳 동위현에는 마침 쉼재고개를 지나 고을로 들어오는 입구에 삼도하(三道河)라는 개울이 흐르는 삼도 다리가 있어서 다리를 열기에 안성맞춤이다.
二. 방울소리는 귀신의 이목을 끌고 이승의 존재가 아닌 것들을 불러들인다. 굿의 시작을 신들에게 알리기 위한 당울림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
三. 방울을 흔들고 나면, 이미 귀신을 불러들인 뒤이므로 되돌릴 수 없다. 굿에 참여하는 자들은 모두 일렬로 늘어서 다릿발을 들고 독경을 왼다. 다릿발은 깨끗하고 흰 무명천이 제격이다. 독경은 귀신이 사라질 때까지 절대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굿이 끝나고 사용한 무명천은 끊어서 불에 태워야 한다.
四. 저세상의 존재는 이세상의 존재와 모든 것을 반대로 행한다. 두 발로 걸어야 할 것이 짐승처럼 네 발로 기고, 때리면 때릴수록 더욱 커진다. 그러니 함부로 저곳에서 건너온 것들에게 손을 대서는 아니 된다.
五. 다리가 이어진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이승과 저세상의 경계는 희미해져 간다. 다리굿을 한 지 한 달이 넘어가면 귀신들이 이승으로 넘어오는 것을 돌이킬 수 없게 된다. 다리를 끊는 의식은 저 너머로 끌려가기 싫다면 동이 트기 전까지 반드시 끝내야 할 것이다.
六. 저세상에서 넘어온 귀신이 독경을 듣다가 무엇인가를 토해내면, 그것을 부숴야 한다. 그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는 알 수 없으나, 분명 그것은 저 너머의 존재와 이승을 연결지어주는 매개체이다.
(…)
角亢氐房心尾箕(각항저방심미기)
斗牛女虛危室壁(두우여허위실벽)
奎婁胃昴畢觜參(규루위묘필자삼)
井鬼柳星張翼軫(정귀유성장익진)]
그 외의 내용을 읽기 위해서는 <모국어>가 중국인 탐사자나 <중국어> 기능 판정에 성공한 탐사자만이 해독할 수 있습니다. 중국어 기능치가 50 미만인 탐사자들은 책을 연구할 때 패널티 주사위를 받습니다. 만신이천록은 한 권짜리 서책으로, 현군칠장비경(룰북 P. 232)을 무당 태화가 독단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책에는 온갖 귀신들을 낳고 잡아먹는다는 커다란 옛신, 압호수(壓澔藪)에 관련된 내용과 압호수에게서 태어나 이계에서 건너온 세상 각지에 존재하는 귀신, 요괴들에 대한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본격적인 연구에는 4주가 소요되고 1d6의 이성치 소모와 더불어 <크툴루 신화> 기능을 +4점 얻습니다. 책을 해독하고 나면 혼령 접촉(룰북 P. 260), 염매厭魅(룰북 P. 245의 괴사), 무고巫蠱(룰북 P. 246의 니오그타의 손아귀) 주문 중 하나를 선택하여 습득할 수 있습니다.
탐사자는 이제 다리굿에 필요한 물품들을 준비해 동위현의 입구와 쉼재고개 사이에 위치한 삼도 다리로 향할 수 있습니다. 방울은 납매의 손에, 다릿발로 사용할 무명천은 조승갑이 청사에 준비해둔 것이 있으며 독경은 만신이천록에 적힌 그것을 외면 됩니다. 현재 시각은 새벽이 깊었습니다. 이제 탐사자는 삼도 다리로 두억시니를 불러내어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한 달 가량을 열려진 채 방치되어 있는 다리를 닫아 이계와의 연결을 끊어야 합니다. 다리는 연결된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으므로, 사실상 오늘 새벽이 마지막 기회입니다.
동이 트기 전까지 남은 시간은 약 1시간 정도이나, 이는 수호자의 재량 하에 유연하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동이 트는 시간은 대략 묘시(새벽 5시 30분~6시 30분)쯤입니다.
[11] 삼도 다리
삼도하 근처는 온통 컴컴하고 사방에 어둑시니가 짙게 깔려 풀벌레 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만이 감돕니다. 다리 너머 쉼재고개는 마치 아가리를 벌린 범처럼 삼켜질듯 거대한 어둠만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앙상한 나뭇가지는 마치 사람의 뼈처럼 보입니다. 돌을 깎아 만들어진 삼도 다리 아래에는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의식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우선 방울을 울려 당울림을 통해 굿이 시작됨을 알려야 합니다. 금방울을 흔들면 청명하고 선명한 방울 소리가 짜랑짜랑 소리를 내며 고요한 새벽 공기를 뚫고 울려 퍼집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차갑고 소름끼치는 공기가 탐사자의 목 뒤를 타고 흐릅니다. 방울을 울린 순간부터, 탐사자는 이승과 압호스가 존재하는 이계의 중간 세계에 진입하게 되므로 의식을 무사히 끝마치기 전까지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사방에 짙은 안개가 끼기 시작합니다. 한치 앞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짙은 안개 사이로, 사방에서 사람과 같은 것들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림자와 안개 사이에서 걸어 나온 것은, 비웃음과 같은 일그러진 표정을 만면에 띄우고 있는 만득의 모습입니다.
* 안개 속에 비치는 그림자는 이계의 존재들입니다. 아직 다리가 이계와 완전히 동화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인 형상이 아니라 그림자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방울을 울리고 난 뒤, 탐사자는 서로가 서로의 무명천을 연결된 다리처럼 길게 늘어뜨려 잡아야 합니다. 탐사자가 독경을 외기 시작하면 이제까지 만득의 모습을 하고 있던 두억시니는 어설프게나마 하고 있던 사람의 행세조차 그만둔 것인지 입꼬리가 눈 밑까지 찢어져 헤벌어진 입을 오물거리며 매우 빠른 속도로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대기 시작합니다. 지리멸렬하고 불경한 중얼거림을 두 귀로 직접 들은 탐사자는 <이성> 판정 (0/1d3) 두억시니는 천천히 발을 질질 끌며 탐사자마다 그 끔찍한 얼굴을 들이대고 다니며 고개를 꺾으면서 코앞에서 탐사자의 눈을 쳐다보거나, 탐사자가 독경을 외울 때마다 그것을 고스란히 거꾸로 따라하는 등 기괴한 행동을 일삼으며 탐사자를 방해합니다. "진익장성유귀정 삼자필묘위루규" "성저미벽항필심방위기두익여장허우유실진귀각정삼자루묘규위"
두억시니와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탐사자는 <정신력> 대항을 합니다. 두억시니가 읊어대는 이세상의 것이 아닌 불경한 독경은 끔찍하고 역겨운 신들에 대한 알아들을 수 없는 찬미로 가득하고, 의식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두억시니의 형상은 점차 인간이 아닌 것으로 변모하게 됩니다. 정신력 대항에 실패한 탐사자는 외던 독경을 멈추고 홀린 듯이 다리를 건너고 싶어지는 충동을 1d3턴 동안 느끼게 됩니다. 옆의 사람이 붙잡아 다리를 건너는 것을 막아줄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다리를 건너는 탐사자가 있다면 해당 탐사자는 로스트입니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안개 속에 나타나는 흐릿한 그림자들은 점차 그 형상이 뚜렷해지고, 두억시니는 혀가 목 메단 인간처럼 바닥까지 늘어지거나 부패하여 푹 가라앉은 눈깔을 뒤집어 흰자만 보이도록 미소를 짓는 등 점점 인간의 형상을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수호자가 생각하기에 적절한 시점이 되면 두억시니는 별안간 몸을 뒤틀기 시작합니다. 괴로운 듯이 몸을 뒤틀어대면서도 얼굴은 무어가 그리 즐거운지 히죽히죽 웃어대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은 그 기괴함을 더욱 극심하게 합니다. 그리고 곧, 두억시니가 아가리에서 무언가를 토해냅니다. 눈구멍이 없는 사람의 두개골입니다. 두개골을 토해낸 두억시니는 이제는 완전히 썩어 푹 가라앉는 눈을 부릅뜨더니, 두개골을 잡으려고 하는지 네 발로 재빠르게 기어가기 시작합니다. 탐사자가 잡을 수 있을듯 없을듯 아슬아슬한 상황을 묘사해주세요. 두개골을 빼앗은 뒤 <근력> 판정이나 그 외에도 <투척> 등 적절한 판정을 통해 두개골을 부수겠다고 선언해서 성공한다면, 이후에 두개골은 산산히 조각납니다.
두개골이 부서지면 두억시니는 비명을 지르듯 턱을 가슴 아래까지 내려오게 벌린 채 그대로 눈깔만 돌려 탐사자를 쳐다봅니다. 그렇게 굳은 듯이 서있던 두억시니는 마치 물처럼 흐물흐물하게 녹아내리기 시작하더니, 흘러내린 두억시니의 잔해들은 다리를 타고 흘러 안개가 잔뜩 끼어있는 다리 너머로 사라집니다. 탐사자의 주위를 둘러싼 불길한 기운도 점차 걷혀 가기 시작합니다. 어느새 안개가 사라지고 동쪽에서는 점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탐사자는 다릿발로 사용한 무명천을 끊어서 불에 태워야 합니다. 만약 동이 트는 시점까지 다릿발을 끊어 태우는 것을 잊거나 이 과정을 생략한다면 이계로 연결되는 통로를 마지막으로 닫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게 되어 이제 영영 그 문을 닫을 수 없게 됩니다.
엔딩
탐사자는 이 기묘한 사건을 사실대로 정리하여 금상께 보고를 올릴 수 있습니다. 임금께서는 사건의 보고를 받고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시지만, <설득> 판정을 하든 적당히 납득을 할 만한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임금께서는 보고를 받아들이십니다. 또한 탐사자는 동위현에서 발견한 세자의 사조룡 패를 임금께 전달할 수도 있습니다. 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금상은 얼굴을 뻣뻣하게 굳히더니, 곧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탐사자에게 수고하였다며 긴 여행길에서 쌓인 여독이 클 테니 그만 물러나라 명하십니다.
탐사자가 사건을 해결하고 나서 며칠 뒤, 한양에서는 세자의 잔악함이 하늘을 찌르고 방자하기가 이를 데 없으니 금상께서는 세자 이선을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휘령전 앞 뒤주에 폐서자를 가두라 명합니다. 만약 탐사자가 임금께 세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세자가 궁궐 바닥에 묻어놓은 수많은 군기붙이들이 발견되었다는 이유로 임금은 세자를 폐하기로 결정하십니다. 당시 탐사자가 궐 내에 있었다면, 탐사자는 세자가 영조 임금에게 애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 죄는 많지만 죽을 죄는 또 무엇입니까? 아버님, 아버님,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글도 잘 읽고 말씀도 잘 들을 테니 제발 이러지 마소서!"
그러나 임금의 분노는 서슬퍼랬고 굳건했습니다. 세자가 뒤주에 갇힌 뒤로부터 여덟째 날이 지나고, 세자의 부음이 확인되자 영조 임금은 세자의 위호(位號)를 복구하고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려주게 됩니다. 이것은 당시 사도세자의 나이 향년 27세의 일이었습니다.
탐사자에게는 이번 사건의 진상을 밝혀내고 또한 사특하고도 괴이한 존재를 퇴치한 공을 높이 사 그에 걸맞은 포상이 내려집니다. 탐사자는 생환 보상으로 1d8의 이성치를 회복합니다.
의식을 하던 도중 다리를 건넌 탐사자는 실종으로 처리됩니다. 압호스가 잠들어 있는 이계는 인간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은 곳입니다. 그곳으로 가게 된 탐사자가 무슨 일을 겪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입니다.
만약 탐사자가 굿을 끝마치고 의식에 사용했던 무명천을 끊지 않았다면, 이계의 통로는 이제 영영 닫히지 않게 될 것이며 완전히 이 세계와 동화된 다리는 조만간 수많은 이계의 존재들과 사악한 우주의 옛신들을 몰고 오는 통로가 될 것입니다. 멸망의 때가 도래하기 전까지 탐사자는 남은 삶을 어떻게 보낼지 결정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후일담
이번 시나리오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시나리오로, 두억시니라 불리는 요괴를 재해석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요괴를 차용한 시나리오인 만큼 조선시대 특유의 분위기를 살린 한국적 공포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실존하는 역사를 공간적, 시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게 되었습니다만 이 시나리오는 실제 역사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고 또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 가상역사 시나리오입니다. 시나리오 작성의 편의상 일부러 시나리오와 충돌하는 내용은 제외하거나 지나치게 깊은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세세한 시대 설정은 최대한 알기 쉬운 방향으로 재정리, 편집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 고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부분이 나타날 수 있으나 해당 부분들은 실존하는 역사를 훼손하거나 왜곡할 의도는 없음을 밝힙니다.
결말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우선 두개골을 깨트렸다고 해서 두억시니를 완전히 무찌른 것은 아닙니다. 두억시니는 단순히 쓰고 있던 껍데기를 잃어버리고 압호스가 있는 이계로 되돌려보내진 것일 뿐, 죽지 않았습니다. 언젠가 이계로 통하는 관문을 또다시 여는 자가 나타날 때 두억시니를 비롯한 수많은 이계의 괴물들이 언제 다시 현세로 강림하게 될 지 모르는 일입니다.
엔딩은 항상 크툴루 신화에 걸맞게 불완전한 일상을 염두에 두고 작성하는 편입니다. 이미 한 번 우주적 존재들에 대해 알아버린 탐사자는 다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본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해서 시나리오를 다녀온 탐사자를 데리고 캠페인을 하는 것도 재미있는 플레이가 될 지도 모릅니다. 아무쪼록 본 시나리오를 즐겁게 진행하셨다면 기쁘겠습니다.
참고문헌
임장, 천예록(天倪錄) -한국학도서관(2005)
영조실록(英祖實錄) -조선왕조실록
성종실록(成宗實錄) -조선왕조실록
신주무원록(新註無寃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의약학 문헌
증수무원록(增修無寃錄) -한국민족문화대백과 > 조선시대사 문헌
문경(文景) 성석린(成石璘), 청구풍아(靑丘風雅)
단원자, 보천가(步天歌)
논문
정경민, 《귀신으로서의 아이가 지닌 표상성 연구 - 천예록 소재 두억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 한국고전연구학회(2019) Vol.0 No.47
이승은, 《『天倪錄』 소재 기이담의 양상과 의미》 한국어문교육학회(2011) Vol.43 No.-
덧붙이는 말
1) 본 시나리오의 진상 부분에 등장하는 신화생물 압호스에 대한 설명은 룰북(P. 325)을 참고했습니다. 한자로 압호스를 표기한 압호수(壓澔藪)는 억누를 압壓, 클 호澔, 늪 수藪 자를 씁니다. 요물을 낳으며 동시에 억누르는 거대한 늪이라는 의미로, 발음을 비슷하게 본딴 말장난입니다.
2) 두억시니의 형상 및 설화의 특징은 「한국고전연구학회」의 정경민, 《귀신으로서의 아이가 지닌 표상성 연구 - 천예록 소재 두억신 이야기를 중심으로 -》 논문을 참고하였습니다. 두억시니의 스테이터스는 룰북에 등장하는 신화의 괴물들 란을 참고하여 작성하였습니다.
3) 시나리오의 주요 사건이 되는 연쇄 살인사건은 「조선왕조실록」 영조 10년 5월 5일에 기록된 바 있는 영만이라는 이름의 노비가 제 주인 김대뢰를 포함한 30여명에 달하는 사람을 죽였다고 나와있는 사건을 참고하였습니다. 만득이라는 인물은 본 시나리오에서만 등장하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4) 개요에 사용된 방문은 성종 9년(1478년 무술년) 1월 11일에 발생한 살인 사건을 일부 인용한 것으로, 본 시나리오는 실존했던 사건과는 연관이 없습니다.
5) 아검군 동위현은 압호스가 잠들어 있다고 전해지는 아컴 시 근처에 위치한 던 위치라는 지명을 변형한 가상의 지역입니다.
6) 세자 이선은 사도세자의 휘입니다. 사도세자가 1761년 4월에 20일 동안 영조 임금 몰래 평안도에 다녀왔다는 사실은 「승정원일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아사한 사건인 임오화변은 「조선왕조실록」 영조 38년 윤5월 13일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 시나리오의 진상은 해당 역사적 사건들을 채용하여 일부 변용한 것으로 실제 역사가 아닙니다.
7) 도입부에 등장하는 서화에 쓰여진 글귀는 「청구풍아」에 수록되어있는 한시 중 한 작품입니다.
8) 수사를 할 때 사용하는 검시 기법은 「신주무원록」과 「증수무원록」에 나오는 방법을 인용했습니다.
9) 두억시니의 존재를 암시하는 책은 「천예록」에 기록된 부분을 일부 발췌, 변형하였습니다.
10) 두억시니를 쫓고 이계로 연결된 통로를 닫는 독경은 「보천가」에 수록되어 있는 문구로,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할 때 사용하고는 하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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